시간, 돈, 자유 그리고 블록체인

Jeeyong Um
5 min readMay 9, 2022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은 무엇일까?

저마다의 생각이 있겠지만 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금이다" 같은 뻔한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자원의 경제적 가치가 희소성으로 인해 생겨난다고 배웠다.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그 자원을 가지려는 수요가 이를 넘어서면 경쟁이 발생하고 가격으로 표현되는 경제적 가치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러한 수요, 공급의 불일치로 인한 경제적 가치를 논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한데 일정한 시간 구간을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특정 시점 또는 일정 기간을 가정했을 때 그 기준 안에서 경제적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수명의 제한 없이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무한에 가까운 우주 공간 안에서 무한의 시간 안에 결국 누구나 원하는 양의 자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요의 주체인 인간이 유한한 시간을 살기 때문에 공급에 한계가 발생하고 이로 인한 경쟁으로 경제적 가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자원의 가치는 궁극적 자원인 시간의 가치로 환원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인간은 각자 정해진 양의 시간(수명)을 갖고 태어난다. 물론 주어진 시간의 총량을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고 그 시간마저 모두 쓰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사람마다 평균적인 양의 시간이 주어지며 그 양이 유한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시간이란 자원이 갖는 흥미로운 속성은 의식적으로 소비하든 소비하지 않든 일정한 속도로 계속 소모된다는 것이다. 시간 소비를 재촉하거나 늦추는 방법은 없다. (주말에는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는 그럴듯한 주장이 있으나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순간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모든 시간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는 분업화, 전문화를 통해 현대 문명의 존재 기반이 되는 막대한 생산성을 달성하는데 이를 위해 모든 구성원이 시스템에 기여할 것을 요구한다. 개인은 본인의 시간을 시스템에 제공하는 대신 기여의 대가로 돈을 받고 이를 시스템에서 생산된 다른 자원으로 교환할 수 있다.

돈은 단순히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대체불가능하고 유한한 내 시간을 저장한 수단이며 자유를 희생한 대가이다. 그런데 이 돈을 누군가 마음대로 발행하여 돈에 저장된 가치를 변화시키고 재분배 한다면? 같은 돈으로 더 가치있는 물건을 살 수 없게 된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내 시간을 내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

물론 통화정책이나 재분배정책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이룩한 모든 행위자의 성취는 공동으로 구축한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지불이 필요하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논리이다. 다만 돈에 저장된 시간 가치의 재분배가 소수의 자의적 판단 아래 이뤄지고 결정 과정이 공개되지 않으며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면 결국 우리는 결정권자의 선의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수 밖에 없다. 이것이 권한 가진 자가 “Don’t be evil” 할 것을 믿어야 하는 상황을 넘어 “Can’t be evil” 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이유이다.

우리 자신을 지킬 방법은 없는 것일까? 가장 쉬운 방법은 부패한 시스템을 떠나는 것이지만 (자연인이 될 준비를 시작해보자)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최선의 방법은 시스템이 우리를 지킬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것이지만 현실에선 이를 달성할 수 없었다.

당장 국가 시스템만 봐도 내가 태어날 나라를 선택할 수 없고 다른 나라로 국적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으며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이미 이해당사자가 너무 많아 극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블록체인”이 등장하면서 이런 시스템을 밑바닥부터 재설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사회계약론을 배울 때 “전 계약서를 본 적도, 서명한 적도 없는데요" 라며 농담하지만 블록체인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계약의 내용, 미리 정의한 규칙이 코드로 표현된다.

명확히 자신의 의사로 동의할 수 있을 때 참여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며 의견 차이로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는 경우 시스템을 이탈하거나 아니면 그 시점으로부터 시스템을 복제, 분기할 수 있다. 오픈 소스가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이라고 한다면 블록체인은 사회 시스템 개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몇 명의 사람이 모여 국가를 세울 수 있을까? 웃음거리는 커녕 관심을 끄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에서는 선한 의지를 가진, 몇몇의 미친 사람들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하데렉이 하는 일도 그런 것이다. 우리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중립 네트워크의 구축.

지금 블록체인 분야에서는 실험과 사기의 경계에 놓인 새로운 도전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그 도전의 의의와 성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사람들의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팀은 찾기 어렵다.

화성 이민 계획으로 돈을 끌어 모으지만 실상은 대기권 탈출 로켓만 반복해서 만드는 상황이랄까. 진짜 화성까지 가려면 고민해야할 문제가 산더미 같은데 정작 미리 억만장자가 되어버린 수많은 개발팀은 굳이 화성 이민을 갈 필요가 없어졌다.

하데렉은 로켓이 아니다. 그래서 다른 회사들처럼 얼른 로켓에 올라타라고 권유하기 어렵다. 언제까지고 선비처럼 가난을 훈장 삼을 생각은 없지만 우리의 선택지 중에서는 빠르게 회사를 키우는 것보다 궁극적인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길인지가 우선이다. 우리는 로켓에 올라탈 사람이 아니라 로켓을 함께 만들 사람을 찾고 있다.

경제적 보상을 약속하는 회사는 많이 있다. 하지만 인생을 걸고 할 만한 가치 있는 일에 관해 얘기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왜 다들 조기 은퇴를 말할까?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 외치지만 실상은 본인도 그렇게 믿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은퇴도 하지 말고 평생을 노예처럼 일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들이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니까 지금 이곳에서 하는 일이 당신에게도 재미있고, 가치있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어야 한다. 심지어 억만장자가 되어도 계속 하고 싶은 그런 일 말이다.

인생을 걸만한 일을 찾는다는 것,

꽤 멋진 일 아닌가?

--

--